지난 8월 고향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올해 1월 3일에 입대한 조카가 휴가를 받고 복귀한 날 불침번 근무를 서다 말년 병장이 쏜 총에 맞아 병원에 있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내용을 들어보고 충격을 받았다. 피해자 김 이병의 보호자들은 혹시 군의 미움을 사 치료를 제대로 못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언론보도를 자제하고 군과 협조하기로 했다.
군에서 발생한 사건을 민간검찰로 이첩시킨것도 모자라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부지검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피해자 김 이병에게 피해자 조사를 받으러 검찰에 출석하라고 통지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논란이 확산되자 드디어 검찰 조사관이 24일 아주대 병원을 방문해 조사하기로 했다.
피해자 가족과 김 이병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사건의 전말을 공개하고자 한다.
김 이병은 3월 5일 육군25사단72연대3대대11중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3월 5일부터 6월13일까지 자대에서 군 생활을 하던 중, 6월 14일부터 18일까지 휴가를 받아 집을 다녀간 뒤 18일 저녁 부대에 복귀했다.
복귀 당일 밤 부대 소초 내무반 불침번 근무를 갑자기 명 받고, 불침번도 탄약불출을 하는 줄 알고 군장검사대로 가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가해자 노oo 병장이 짜증스런 말투로, 불침번 근무자는 탄약을 받지 않아도 된다며 상황실에 가 있으라고 말했다.
상황병과 상황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야간 근무에 앞서 소초 소대장은 근무자들에게 군장 검사대에서 실탄을 지급하고 총기 안전 유무를 확인했다.
총기 안전 유무확인 과정에서는 ‘총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고, 실탄 장전을 하지 않았다’는 안전검사는 필수이다.
실탄관리 의무가 있는 소대장은 실탄 박스 열쇠를 노 병장에게 맡겼다.
이날 (6월18일)밤 11시30분경 노 병장은 동초 근무를 하기 전에 김 이병과 상황병이 근무하던 상황실에 들어와 벽에 걸린 열쇠보관함에 열쇠를 걸어놓았다.
사건은 여기서부터 진행된다.
불침번 근무를 명 받은 김 이병은 평소 근무자들처럼 상황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노 병장은 탄약상자 열쇠를 걸어두기 위해 들어왔다가 고개를 조금 숙이고 앉아있던 김 이병에게 휴가를 복귀하자마자 졸고 있냐고 빈정거리며, 목 뒷덜미를 세 차례 가격했다.
이때 상황병이 상황실을 나가던 노 병장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며 불러 세웠다.
당시 김 이병은 벽면에 위치한 책상을 응시하며 좌측에 앉아 있었고 상황병은 우측 책상에 앉아 있었다.
노 병장은 상황병 뒤에 서서 대화를 하고 있었고, 김 이병은 노 병장 뒤에 있던 이등병 동초 근무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노 병장이 소지하던 K-3총의 총구가 김 이병 가슴을 향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두려움과 위협을 느낀 김 이병은 앉아있던 의자를 뒤로 살짝 빼 총구가 자신을 향하지 않도록 했다.
말년 병장에게 총구를 치워달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후 귀를 찢은 총성이 들렸고 김 이병이 놀라서 오른쪽을 돌아보는 순간 귀를 찢는 총음이 다시 한 번 더 들렸다.
순간 김 이병은 총에 맞았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총성이 나고 나서 2~3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고 김 이병은 자신의 제 가슴과 팔 다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온몸을 적시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몇 분 뒤 김 이병은 상황실에 누워 대충 지혈을 받고 양주병원을 들렸다가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죽는다는 것이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고 한다.
그렇게 수도통합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부모님을 보았고 이후 기억을 잃게 된다.
<단순 오발인가, 고의성 있는 사고인가에 대해>
부대에서 김 이병은 직책이 K-3 부사수이기 때문에 노 병장이 소지했던 K-3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K-3총의 장전손잡이는 평소에 접혀져 있다고 한다.
사격할 때는 장전손잡이를 열어서 당기고 다시 앞으로 밀어서 장전을 한 뒤, 안전 버튼을 사격에 놓고, 방아쇠를 당겨야 총알이 발사 된다는 설명이다.
김 이병은 가해자 노 병장의 고의성을 4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K-3총의 장전은 장전손잡이를 당길 때 힘을 세게 주지 않으면 장전이 되지 않는다. 어디에 걸리거나 해서 우연히 장전 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고 했다.
즉 노 병장이 직접 장전을 한 것이며 이는 고의성이 있고, 오발이 아니라는 얘기다.
둘째, 사격 버튼은 엄지 손가락으로 한 번 누르는 것으로 사격위치와 안전 위치를 변경하게 된다.
사격 버튼이 실수로 사격 위치에 놓였다고 하더라도 실탄을 장전하지 않으면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은 발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노 병장은 실탄을 지급받고 군장검사 과정에서 ‘총기에 아무런 이상없고, 장전을 하지 않았고, 사격버튼이 안전에 있다’라는 같이 동초 근무를 했던 이등병에게 말하는 통상적인 안전 검사까지 마쳤다고 한다.
이후 열쇠를 보관하기 위해 상황실로 들어오는 시간까지 실탄 장전과 사격버튼을 사격위치로 변경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군장검사대에서 안전검사가 끝나고 상황실로 들어와 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전까지의 시간이 바로 그 추정 시간으로 해석했다.
총기 안전검사까지 마친 노 병장의 K-3총에 어떻게 실탄이 장전됐고, 안전 장치가 풀려 사격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노 병장이 처음부터 고의적으로 총을 발사할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총알이 어디부터 맞았는지는 기억이 없으며 총상 위치 설명으로 고의성을 간추렸다.
우선 실탄이 한 발도 아닌 4발이 발사됐다는 점.
대퇴부를 관통한 총알의 궤도와 왼쪽 흉부를 뚫고 관통해 나간 총알의 궤도.를 편의상 1번 궤도라 하고, 팔꿈치를 날려버린 총알의 궤도와 그 옆으로 팔을 관통한 총알을 2번 궤도로 칭한다면,
1번 궤도와 2번 궤도는 거의 수직으로 교차가 된다.
사고 당시 김 이병의 자세와 총구의 방향을 고려해 볼 때 처음 들린 총성 2발은 1번 궤도를 통해 관통했고, 김 이병이 오른쪽을 돌아보고서 들린 총성 2발은 2번 궤도를 통해 관통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서로 다른 두 방향의 총알궤도로 두 차례 사격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처음 2발로 끝나지 않고 연이어 2발이 추가 발사됐다는 것은 충분히 고의성이 있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K-3총은 기관총으로서 다른 총들과 달리 방아쇠를 완전히 당기기 전에 발사된다.
이 때문에 K-3총을 2발씩 발사하기 위해서는 미세한 힘의 조절을 통해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1발씩도 아닌 2발씩 두 번씩이나 발사했다는 것은 노 병장이 직접 자신의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 이병의 대학 전공은 ‘컴퓨터소프트학과’이다. 보안업체에 들어가 가장 뛰어난 보안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김 이병의 꿈이다.
이 사고로 장애가 된 왼쪽 팔, 감각이 없는 손가락은 의사들도 정상적인 생활은 어려울 것으로 말했다.
김 이병의 꿈이 무너졌다. 그것도 군대에서 무너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말년 병장의 무참하고도 고의성 짙은 총기 사고로 젊은이의 육체는 물론 미래까지 사라진 것이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입원해 있는 동안 한 차례도 병원을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의 도의까지 저버렸다.
김 이병은 삶이 두렵고 세상이 무섭다고 했다.. 군대에만 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매일 매일 진통제에 고통을 참아내고 있고, 마약 성분이 있는 진통제보다는 스스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상은 민간검참에 김 이병이 진술서를 보낸 내용이다>
더욱 기가 막힌 일도 있다. 부대에서 김 이병을 돕기위해 성금을 모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금한 돈을 피해자측에 전달하지 않고 몇몇 부사관들이 김 이병이 입원한 병원 주변에서 음식값 등으로 지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이병의 보호자가 그럴 수 있느냐고 묻자 "같이 밥 먹고 그러지 않았냐"며 오히려 역정을 내더라는 것이다.
군대에서 일어난 일을 군 법정에서 처리하지 않고 지해자 조사도 없이 단순사고로 결론지어 민간검찰에 떠 넘긴 군의 부도덕한 행태가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아 누가 이런 군을 믿고 자식을 군대에 보낼 용기가 있겠는가?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그동안 보도를 자제하고 절제했던 내 자신도 부끄럽다.